[한겨레] 금융이 사회를 만났을 때…걸음마 ‘사회적 금융’에 날개 달까?

출처 : https://bre.is/BHO2WjqxZ

한겨레 최우성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2019.01.30

금융이 사회를 만났을 때…걸음마 ‘사회적 금융’에 날개 달까?

 

[더 나은 사회]
‘사회가치연대기금’ 출범 계기로
태동기 국내 사회적 금융 ‘도약’ 발판
자생력 갖춘 생태계 만드는 게 관건
정부, 인력 양성 등 인프라 구축 힘써야 

'사회가치연대기금 추진단'이 지난 29일 해단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금융 활성화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활동해온 ‘사회가치연대기금 추진단’이 지난 29일 해단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제공

 

연간 매출액 200억원을 웃도는 한 사회적기업. 자본시장은 신용등급 BBB+를 매겼다. 재무적 가치만을 잣대로 삼은 냉정한 자본시장의 눈에 사회적 경제 기업의 가치사슬은 ‘보이지 않는 신용’일 뿐이다. 현재 국내 사회적 경제 기업 가운데 투자적격등급(BBB- 이상) 업체는 고작 8%.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수많은 기업과 프로젝트들이 투자·융자·보증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스러지기 일쑤다. 만일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담은 잣대에 따라 사회적 경제 영역 구석구석으로 자금이 흘러들게 만드는 새로운 자본시장이 만들어진다면?

다시 현실로.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 규모는 어림잡아 연간 60조원대.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기업 범주에 속한 모든 조직의 경제활동을 아우르는 수치다. 물론 농협·수협·신협·생협 등 특별법에 따른 8개 거대 개별협동조합도 포함한 터라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는 거리감이 크다. 실제로 2017년 기준 국내 사회적기업 전체 매출은 약 3조5천억원. 평균 매출 규모도 15억8천만원에 그친다. 그럼에도 성장세는 매우 빠른 편이다. 국내 사회적 경제가 도입기를 지나 고용과 매출 면에서 양적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문제는 실물 영역의 사회적 경제 성장세를 튼튼하게 뒷받침해줄 금융 영역, 말하자면 사회적 금융의 토대가 매우 취약한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금융이란 사회적 경제 기업에 투자·융자·보증 등의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활동을 일컫는다. 보조나 기부 등과는 달리 회수(수익성)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10여년간 국내에서 사회적 금융 성격으로 운용된 자본 규모는 약 1300억원. 이 가운데 민간 출연자본은 200억원을 밑돈다. 주로 정부·공공재원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서민 정책금융의 틀에서만 사회적 금융이 이뤄져서다. 민간 자본이 참여하는, 자생력을 갖춘 사회적 금융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글로벌 사회적 금융 시장 규모 43조원

 

지난 23일 공식출범한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국내 사회적 금융을 한 단계 도약시킬 디딤돌이 되리란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 경제 분야 구석구석으로 흘러드는 피(자금)가 사회적 경제 기업의 매출 증대를 낳고, 다시 자금 회수와 추가 자금 공급으로 이어지는,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어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국정 100대 과제의 하나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회가치연대기금의 얼개는 크게 세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금의 성격. 민간 부문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금융 수요에 맞게 다양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민간기금으로 운영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의 육성. 사회가치연대기금의 역할은 ‘도매 자금’ 공급에 한정하고, 투자자(금융 공급자)와 사회적 경제 기업(금융 수요자)을 잇는 중개기관을 체계적으로 육성·지원하는 데 힘을 쏟는다. 마지막으로 민간 자금과 금융기관의 사회적 금융 참여를 유도하는 각종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가치연대기금의 탄생 배경엔 국내 사회적 금융의 열악한 현실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지원 방식이 주로 대출·보증에 편중돼 사회적 경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편이다. 만기가 짧은데다 그나마 단순 회생에 무게가 실린 점도 한계다. 단적으로, 2016년 기준 4천억원 규모의 소액금융사업(미소금융)에서 사회적기업 대출은 고작 9억5천만원에 그쳤다. 신용보증기금의 한도사정 특례 역시 5천만원(사회적기업), 3천만원(협동조합)에 머무는 실정이다. 신뢰할 만한 성과 평가 데이터조차 없다 보니 자본시장을 통한 민간 자금의 유입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나라 밖의 움직임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사회적 금융 시장 규모는 약 385억달러(43조원). 2013년(106억달러)에 견줘 5년 새 4배 가까이 몸집이 늘어났다. 사회적 금융 시장의 확대가 사회적 경제의 성장을 앞장서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이 지난해 10월 경북 안동에 위치한 예비 사회적 기업 '생존수영교육연구소' 를 대상으로 실시한 재무관리역량 강화 컨설팅 결과를 논의하는 모습.

사회적 금융의 성공을 위해선 중개기관 육성, 지원이 시급한 과제다.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인 한국사회혁신금융이 지난해 10월 경북 안동에 위치한 예비 사회적 기업 ‘생존수영교육연구소’ 를 대상으로 실시한 재무관리역량 강화 컨설팅 결과를 논의하는 모습. 한국사회혁신금융 제공.

 

보증의 승수 효과 7~13배 예상

 

이런 점에서 사회가치연대기금의 출범은 여러모로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 대출·투자·출자·보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맞춤형 인내자본을 공급하는 마중물 노릇을 할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시중은행 등 상업적 투자자(선순위)와 함께 후순위 투자·융자에 나서거나, 신용보증기금 등의 사회적 경제 지원계정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보증(후순위)에 나설 기반도 마련된다. 보증 출연금 대비 승수 효과는 7~13배에 이를 전망이다. 마치 자본시장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 경제를 뒷받침하는 최종 위험 부담자가 홀연히 등장한 꼴이다. 소셜하우징이나 지역 자산화, 신재생 에너지 등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을 활용한 사회적 경제 영역의 다양한 개별 프로젝트에도 든든한 자금줄이 생긴 셈이다. 지금껏 국내 사회적 금융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당장 재원 문제부터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사회가치연대기금이 내세운 목표는 앞으로 5년간 3천억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 민간의 자발적 출연·출자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되, 사회적 금융 시장 조성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초기에 목표금액의 절반 정도는 정부·공공재원으로 지원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출연을 위해선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통해 기금 출연·출자의 근거가 마련돼야 하지만,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몇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민간 자본 내부의 ‘간섭 효과’ 가능성도 숨은 변수다. 제아무리 정부의 정책 의지가 강하다 하더라도 사회적 금융 영역으로 흘러드는 민간 자본 규모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늘어나리라 기대하긴 무리다. 이미 사회가치연대기금과 같은 사회적 금융 도매기금 시장도 미약하나마 조금씩 싹트는 중이다. 게다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독자적으로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대기업(공익재단)도 여럿 있다. 사회적 금융 영역으로 더 많은 민간 자본이 흘러들도록 하는 유인 효과를 노렸으나, 정작 국내 사회적 금융의 전체 ‘파이’는 키우지 못한 채 금융 수요자 사이의 경쟁만 치열해질 우려도 있다.

 

사회투자 세제 혜택 제도 고려할 만

 

돌이켜보면, 걸음마 단계인 국내 사회적 금융은 일찌감치 ‘흑역사’의 상처가 깊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주도로 밀어붙인 미소금융이 한해 정도만 반짝 성과를 낸 뒤 기존 소액금융사업 시장마저 사실상 고사시킨 전례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금융이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정부와 민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초기 정착에 보탬이 되는 건 물론이다. 다만 장기적으론 생태계의 자생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정부가 시장의 플레이어(행위자)로 직접 나서면 자금 흐름을 왜곡시킬 공산이 크다. 정부의 역할은 전문 인력 양성이나 네트워크 구축을 비롯해 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감독하는 등 인프라 전반을 만들어내는 ‘시장 형성자’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특수성을 반영한 평가 시스템 개발도 과제다. 경제적 가치(신용정보회사)와 사회적 가치(사회적 금융)의 통합평가 모형은 사회적 금융 시장의 핵심 인프라다.

민간 자본의 참여 유인을 어떻게 높일지도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지역사회 재생 세금 경감법의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NMTC)나 영국의 사회투자세제우대제도(SITR) 등은 모두 사회투자 형식의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참고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 금융 협회인 연대금융네트워크(CAP Finance)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해 국내 사회적 금융 전문가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지난해 4월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 금융 협회인 연대금융네트워크(CAP Finance)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해 국내 사회적 금융 전문가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주도 사회적 금융 도매기금. 사회가치연대기금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역 현장에서 성장해온 국내 사회적 경제 영역의 소중한 결실이자 동시에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 국내 사회적 금융이 한 단계 도약할 발판이자 사회적 경제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내디딜 수 있는 기회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금융의 자생력을 넘어 사회적 경제 전체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한겨레로부터 출처 명시 조건으로 자사 홈페이지 게재를 허락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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