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1조 순익 낸 은행 사회책임 뭐했나… 사회적 금융 키워야”

출처: https://goo.gl/sWFbCf

한겨레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 센터장, 2018.04.04

“11조 순익 낸 은행 사회책임 뭐했나… 사회적 금융 키워야”

【HERI의 눈】 제1회 사회적 경제 정책포럼 
사회문제 해결과 공동체에 투, 융자하는 사회적 금융
사회적 경제 이해하는 별도의 시장 조성과 인프라 필요
지원 정책보다 기존 금융의 편견과 불평등 해소가 관건

지난달 30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활성화전국네트워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포용금융연구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제1차 사회적 경제 정책포럼에서 ‘사회적 금융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금융은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산업강국으로 커나가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금융의 중심축이 기업자금 공급에서 아파트 등 부동산 담보대출로 이동했다. 특히 은행이 그러했다. 이전에는 지점장이라도 알아야 대출받을 수 있던 일반인이 집살 돈을 빌리기는 쉬웠지만, 역기능이 적지 않았다. 돈을 빌려 사게 되면서 아파트값은 계속 뛰었고, 가계 부채는 1450조원(2017년 말 기준)에 이르렀다. 몇 십년을 갚아야 하는 대출로 비싼 집을 사다보니 “전국민이 은행이 소유한 집에 월세를 내고 사는 꼴”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은행들은 안전한 아파트 담보를 깔고 앉아 이자와 수수료로 지난 한해만 해도 11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고, 여전히 높은 임금과 성과급을 즐기고 있다. 국민은 고통스러운데 금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 최종구 위원장은 금융혁신 4대 전략 중 하나로 ‘포용적 금융의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서민의 금융부담을 완화하고,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화하는 것이 정책방향의 뼈대다.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강화’ 정책엔 ‘사회적 금융 활성화’ 도 있는데 이를 구체화해 정부는 2월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적 금융 정책 활성화 방안’ 을 내놨다.

사회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과 맞물려 사회적 금융의 가치와 역할, 구체적인 접근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사회적경제활성화전국네트워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포용금융연구회와 함께 포럼을 열어 ‘사회적 금융의 쟁점과 과제’를 짚었다. 지난달 30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주류 금융의 혁신과 더불어 사회적 금융을 이해하는 별도의 시장 조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지금까지 금융의 유일한 혁신은 ATM 정도”

실물경제에선 백화점을 이용할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비싼 금액을 치르도록 하는 데 반해, 금융은 반대방향으로 작동한다. 신용등급이 높은 고액자산가(1~3등급)는 4% 미만의 낮은 금리로 이용하도록 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자(6등급 이하)는 이자 최고금리로 제한해도 24%의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용기 포용금융연구회 회장(아주대 교수)은 “이런 현상은 기존 금융이 제대로 된 상품과 서비스 개발은 하지 않고, 부동산 담보 대출 등 안전한 시장에만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 폴 보커의 발언을 인용해 “지난 20년간 금융의 유일한 혁신은 현금인출기(ATM) 정도”라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금융산업은 정부의 예금보증 등 납세자들의 암묵적 보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주류 금융시스템이 금융산업만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도록 하는 혁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동곤 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장은 지난 2월 발표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의 내용을 설명했다. △자금의 도매공급기관인 ‘사회가치연대기금’ 설립지원, △금융과 사회문제에 전문성이 있는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육성, △민간투자자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것이 큰 골자다.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캐피탈(BSC)을 모델로 한 ‘사회가치기금’은 일종의 도매금융으로 5년간 3천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은 이런 기금을 활용해 투융자 대상 사회적 경제 기업을 발굴하고 금융상품 개발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 과장은 “민간이 주도하도록 돕고, 정부는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2월 발표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밝혔다.

자료: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 발제문 중 ‘사회적 경제 기업에 적합한 새로운 평가등급 산정 방식 제안’

사회적가치 반영하는 신용평가모형 개발해야

한국사회혁신금융 기업정보시스템에 의하면 3년(2014년~2016년) 동안 1개년 이상 재무제표가 있는 사회적 경제 기업 1113개를 분석한 결과, 71% 정도가 신용등급 B~CCC 사이에 분포하고 있으며, 투자적격등급으로 구분되는 BBB 이상은 8%에 불과했다. 2015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기업생멸행정 통계자료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3년 생존률은 91.8%로 일반기업 38.2%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지만 신용등급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는 “자금공급이 많이 늘어나겠지만 기업평가를 위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나 평가시스템이 미비하다”며, “사회적 경제 기업의 비즈니스를 평가하기 위해선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평가모형을 통해 신용등급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혁신기업에게 투융자하고, 이들의 성장을 지원해 온 한국사회혁신금융의 기금 부실률은 0% 수준이다.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는 정부의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의 의의로 “1990년 말 외환위기 전후로 고용불안,양극화,고령화 등의 문제에 대처해 온 사회적경제 활동 주체들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고 주요 정책으로 수용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회적 금융이 사회적 경제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있는 활동(프로젝트)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활동으로 폭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금융의 목적이 ‘사회적 경제 기업의 자금난 해소’로 한정될 경우 컨소시엄을 통한 프로젝트,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등 사회적 가치가 있는 다양한 활동을 촉진하고 활성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사회적경제의 리스크 받아내는 사회적금융이어야

사회가치연대기금 설립과 사회적 금융중개기관 육성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방안에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공적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정은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장은 “사회적 경제 기업은 시장실패가 일어난 영역에서 이를 교정하는 공적 역할을 하지만 현 기금 설계는 원금을 보장하는 투자, 융자가 기본으로 돼 있다”며 “이대로 가면 자금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는 여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회적금융을 ‘“회수를 전제로” 사회적경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은(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장), 양동수(사회적경제 법센터 더함 대표), 김동곤(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 과장), 김용기(포용금융연구회 회장), 변형석(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대표), 이상진(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 문보경(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 박학양(신용보증기금 이사), 김대훈(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정책위원장).

김대훈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은 “지자체 기금과 민간 기금의 역량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역할로서의 정부기금이 전향적으로 검토되길 바란다”며, “신협, 새마을금고, 민간의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들이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관계금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체계가 짜여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별도 기금 조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공적인 정책자금, 지원체계 안에서 장애나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5년간 5천억원 사회적경제기업에 신용보증

사회적 금융도 일반 금융과 마찬가지로 투자실패나 정책실패 등 일정 정도의 손실을 사회화할 수밖에 없다. 양동수 사회적경제 법센터 더함 대표는 “금융은 자산 건전성과 부실관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자금공급이 확대될 때 금융중개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될텐데, 손실의 사회화와 건전성을 어떻게 조화할지 사회적 경제 영역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 금융의 속성을 감안하는 동시에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이익을 냈을 때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용보증기금 박학양 이사는 “2012년부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신용보증을 지원해왔지만, 규모는 미약했다”며, “올해부터 5년 동안 5천억 정도의 신용보증을 사회적 경제 기업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용보증기금은 신용이나 불확실성 때문에 금융권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제 주체들이 금융에 접근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국가가 신용을 보증을 해주는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는 “2012년 당시 중소기업 보증규모 50조의 5% 규모인 2조5천억원 정도의 신용보증을 사회적 경제 조직에 할애하자는 계획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금융접근성과 공급량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일반 중소기업도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을 병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변형석 대표는 “본질적으로 한국사회의 기업문화, 기업방식, 정부의 사회적 가치 지향성을 높여가며 주류 금융의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사회적 금융을 이해하는 별도의 시장 조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 센터장 gobogi@hani.co.kr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란 기업, 정부, 비영리단체, 학계 등 여러 조직이 유기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어 사회 문제를 해결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관련 기사: “사회적기업 신용등급 일반기업과 달라야”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38610.html

*한겨레로부터 출처 명시 조건으로 자사 홈페이지 게재를 허락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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