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소소하지만 위대한 돈, 지역에 생기 불어넣는 ‘공동체 기금’

출처: https://goo.gl/5VNv6D

한겨레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2018.04.11

소소하지만 위대한 돈, 지역에 생기 불어넣는 ‘공동체 기금’

 

[더 나은 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위해 ‘십시일반’
시민단체와 사회적 경제 공동 기금 조성
지역공동체 이익과 발전 위해 운용
민간 주도 사회적 금융 생태계 씨앗

지난 1월 열린 관악공익활동가대회에서 관악뿌리기금의 소소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활동가들이 증서를 들고 있다. 관악뿌리기금 제공

“감정노동에 지친 동료에게 휴식과 재충전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중증장애인과 활동보조인 사이에서 고충을 처리하고, 감정을 보살피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의 2박3일 제주도 휴가 지원을 신청합니다.”(관악 지역 공익활동가 ㄱ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모임의 결실로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나눔야학을 시작했고, 3명의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앞으로도 만남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지역활동가들의 공부모임 지원을 신청합니다.”(관악 지역 공익활동가 ㄴ씨)

‘관악뿌리기금’의 지원을 신청한 공익활동가들의 사연이다. 풀뿌리 시민단체, 사회적 경제 조직, 인권·노동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공익활동가’라고 부른다. ‘관악뿌리기금’은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공익활동가들을 응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영수증 증빙 필요 없이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60만원까지 오롯이 현금을 지원하는 형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지역단체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개인 100명, 기관 6곳이 1만원에서 50만원까지 기부해 1천만원가량을 모았다.

관악뿌리기금 같은 것을 ‘공동체 기금’이라 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나가는 방법이다. 사회투자지원재단 김홍일 이사장은 공동체 기금을 가리켜 “가난한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적은 액수나마 출자금과 후원금을 내면서 가난한 사람의 잠재력이 모이고, 이 돈이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는 일이다. 긴급자금 대출, 사회적 경제 기업의 종잣돈 지원, 사회주택 마련 등 기금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한 지역에서 1~2년 살며 계속 마주치다 보면 관계가 끈끈해집니다.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뻔히 아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운영에도 참여하다 보니 이 돈은 ‘안 떼먹는 돈’이라는 규범이 암묵적으로 생기는 것 같습니다.” 광진구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로 구성된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이하 광사넷)가 조성한 ‘광진협동기금’을 주도해온 박용수 광사넷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관악구에 관악뿌리기금이 있다면 광진구에는 ‘광진협동기금’이 있다. 원래의 기금은 광사넷 회원 조직들의 상호거래 매출액 중 1%와 회원 조직들의 회비, 후원금이 보태져 3천만원 규모로 조성됐다. 여기에 한국사회혁신금융이 민간에서 조달한 6천만원이 결합돼 총 9천만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광사넷의 회원 조직들이 긴급자금 융통이 필요하거나, 전세자금 등 부동산 자금이 필요할 때 대출받을 수 있다.

지역 풀뿌리 공동체 기금 잰걸음…협동금융과 지역금융 꿈틀

위의 두 사례에 나오는 공동체 기금은 사회적 경제 영역의 숙제인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의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층 뜻깊다. 정부는 지난 2월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에서 지역 중심의 사회적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엔 자금을 공급하는 도매금융 설립을 지원하고, 지역엔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을 육성하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사회적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은 중개기관을 육성한다고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역공동체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네트워크 △지역내 사회적 금융 수요를 발굴하고, 기금운용을 주도할 수 있는 주민 조직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금융 중개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생태계가 돌아가는 것이다. ‘광진협동기금’과 ‘관악뿌리기금’은 지역공동체들이 주도해 공동체 기금을 조성하고 운용해왔다. 모두 지역의 시민사회와 사회적 경제 조직이 오랜 시간 논의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주민 참여와 자기결정권 확대하며 사회적 자본 형성

‘관악뿌리기금’은 ‘관악공동행동’을 준비해오던 ‘관악공동조직준비위원회’의 활동이 모태가 됐다. 2018년 3월 창립한 ‘관악공동행동’은 관악사회복지, 관악주민연대, 봉천동나눔의집, 삼성고등학교사회적협동조합 등 12개 지역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관악뿌리기금’ 모금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던 남상덕 관악교육복지네트워크 이사는 “소위 기금 시즌제를 도입했다. 시즌1의 첫 사업은 ‘공익활동가 소소(小笑)한 기금 사업’이다. 이름처럼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데 의의를 뒀다”고 말했다. 관악 활동가들의 소통과 성장을 위한 모임 지원같이 지방정부의 공모사업이나 후원기관 등에서 지원받지 못하는 영역을 발굴한 것이다. 관악뿌리기금의 준비위원 홍선 관악사회복지 상임활동가는 “관악의 지역운동은 1970년대 빈민운동에서 출발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며 성장해왔다”며 “이 과정에 헌신한 공익활동가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는 일은 지역사회 시민운동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3월 13일 열린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 모습.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제공.

지역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의 만남과 연대

‘광진협동기금’을 만든 광사넷은 2014년 2월 광진구에서 사회적 경제 활동을 하는 16개 조직으로 출발했다. 대부분 사회적 경제 생태계 조성사업을 진행할 때, 지역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진행했지만, 광사넷은 방향을 달리했다. ‘정책’보다는 지역 내 사회적 경제 유관 조직들 간의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광사넷의 첫출발도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41개 조직으로 확대됐는데, 회원 조직들의 협력과 성장을 위해 상호거래, 기금조성, 공동사업 등 지역사회 기여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광사넷이 조성하고 운영하는 광진협동기금에는 지난해 3월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인 한국사회혁신금융이 공동운영자로 참여했다. 박용수 광사넷 집행위원장은 “광사넷이 한국사회혁신금융을 찾아나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 활동을 함께 하며 맺어진 인적 관계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밀착형 관계금융 강화…시간과 경험 필요

관계가 바탕이 된 지역공동체는 지역의 소비와 생산을 함께 하며 경제공동체가 되어 간다. 이는 자연스럽게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회적 경제와 연결된다. 사회적 경제가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마을공동체, 지역자치, 지역복지 등과 촘촘히 연결되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삶을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지역 사회적 금융 생태계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관악과 광진의 사례에서 보듯이 관계를 형성하며 신뢰를 쌓아가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는 “공동체 기금, 공제 기금 등의 협동금융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민간의 역량이 강화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금융 시스템이 발전해야 한다”며 “민간 주도의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지역사회에서 공동의 기금을 조성해 공동체 이익과 발전을 위해 운영하는 경험을 쌓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한겨레로부터 출처 명시 조건으로 자사 홈페이지 게재를 허락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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