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더 나은 미래] 사회적기업 10년 새 30배 늘어… 인증제도 개편 등 ‘질적 성장’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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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 김경하 기자, 2017.11.28

[더 나은 미래] 사회적기업 10년 새 30배 늘어… 인증제도 개편 등 ‘질적 성장’의 단계로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분석] (3) 사회적 경제, 어떻게 바뀌나

중앙정부 주도의 인증제 한계… 등록제로 전환해야
전문 인력 양성 체계화… 민간 금융 중개 기관 육성 필요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셜벤처 마리몬드의 윤홍조 대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한 휴대폰 케이스 등의 소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조선일보 DB

“사회적 경제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사회적 경제’를 설명한 문구다. 문재인 정부는 민간 일자리 정책으로 ‘혁신 창업’과 ‘사회적 경제 기업 육성’ 두 가지를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은 사회적기업, 마을 기업, 자활 기업, 협동조합 등 다양한 경제주체를 포괄한다. 발달 장애인을 고용해 인쇄물·커피 등을 제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 인천 지역 동네 서점 60여 개 사업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해 공동 브랜드를 구축한 ‘인천서점협동조합’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 2007년 55개에 불과했던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은 1856개로 30배 이상 규모로 증가했다(2017년 11월 기준). 지난 2012년 ‘협동조합’이라는 별도 법인 격 회사가 도입된 이후 1만2000개가 넘는 협동조합도 설립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정부 주도하에 양적 성장을 이룬 사회적 경제 기업이 이젠 질적 성장을 준비할 단계”라고 진단한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심층 분석, 제3편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 과제다.

◇사회적 가치 확산에 드라이브 건 정부, 사회적기업 인증 정책 개편 고려해야

 

지난달 18일 역대 정부 최초로 발표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내용에는 소셜 벤처 분야가 포함됐다. 소셜 벤처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 함께 사회적 가치도 동시에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사회 혁신가들의 코워킹스페이스 ‘헤이그라운드’ 입주사들의 90% 이상은 인증 사회적기업의 울타리 속에 속하지 않는다. 수익금의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데 기부하는 디자인 브랜드 ‘마리몬드’, 만 3세 이상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원하는 부모님과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을 연결하는 시간제 아이 돌봄 매칭 플랫폼 ‘째깍악어’는 소셜 벤처 범주에 속한다. 청와대는 헤이그라운드에서 일자리위원회를 연 이유를 “소셜벤처를 새로운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 확산의 장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사회적기업 인증제에 관한 논란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은 외국과 달리 ‘법적 용어’와 혼용돼 사용돼왔다. 사회적기업육성법 제2조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이란 취약 계층에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으로서 고용노동부 장관(제7조)으로부터 인증받은 자를 말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증하는 사회적기업은 4대 보험료와 인건비(기간별 차등 지급),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있다.

이제 현장에서는 “사회적기업 인증제 및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년 전과 비교해 사회적기업의 숫자는 늘었지만 최근 3년간 사회적기업의 인증 신청 건수는 31.5%나 급감했다. 대신 정부 인증률은 57.4%에서 81.3%로 크게 높아졌다. 올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은 “인증 숫자에 급급해 정부가 인증제를 부실 운영한 것이 아니냐”면서 “한계를 맞고 있는 중앙정부 주도의 인증제도를 당사자 조직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높이는 등록제로의 전환 등 전면적인 정책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고용부 손잡고 사회적 경제 전문 인력 양성 구축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인력 양성 체계 강화’도 주요 정책 과제로 포함됐다. 소관 부처가 교육과정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면서 체계적인 인재 육성 시스템은 미비하다는 지적에서다. 지금까지 정부 지원 교육과정이 창업 및 운영 교육에 편중돼 있는 것도 한계점이다. 이에 교육부와 고용부는 사회적 경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2013년부터 매년 3개 대학을 선정해 대학(원)생과 사회적 경제 조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던 ‘사회적 경제 리더 과정(1년 비학위 과정)’도 내년부터는 5개 대학으로 확대한다. 또한 평생학습도시, 행복학습센터, 지역경제교육센터, 민간경제교육단체협의회 등을 활용해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 평생 학습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3년 전과 비교해 사회적 경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석·박사 과정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부산대 사회적기업학(2010년),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 석·박사(2010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사회적기업 MBA 과정(2013년)에 이어,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2014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2015년),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사회적기업 석사, 이화여대 사회적 경제 석·박사(2017년) 등 각 대학에서 사회적 경제 관련 석·박사 전공을 개설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경제 관련 인재 양성 수요를 정부 정책 차원에서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물음표다. 몇몇 대학에서는 ‘사회 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사회 혁신’에 주목하는 것. 연세대는 2017년 1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사회 혁신가 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에서 개설한 ‘사회 혁신’ 관련 수업을 19학점 이상 수강하면 학교가 사회 혁신가 인증서를 정식 발급해준다. 맥킨지 등 컨실팅 회사와 연계해 사회적기업을 컨설팅하고 새로운 기회를 발굴한다든지 UN협회세계연맹과 파트너십을 맺고 글로벌 사회 혁신 기관에 방문할 기회도 제공한다. 한양대는 동아시아 대학 중 최초로 글로벌 사회 혁신 대학들의 커뮤니티인 ‘아쇼카U’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또한 2018년 1학기부터는 학부에 ‘사회혁신융합전공’도 개설된다. 서진석 한양대 사회혁신센터장은 “융합 전공을 넘어 단일화된 학부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과제”라면서 “대학 내에서는 학과별로 정원이 묶여 있어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 금융 인프라… 민간 생태계 확산을 위한 정책 설계 필요해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의 핵심으로 꼽힌다. 실제 대부분의 국내 사회적기업들은 정부 보조금(51.4%)이나 특수관계인 차입(43.6%)에 의존하고 있다(2015년 고용노동부). 정부가 대부, 신용보증, 투자 등 관련 금융 지원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실효성은 저조하다. 사회적기업의 지원 현황만 봐도 미소금융은 전체(4000억원)의 0.24%(9.5억원),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전체(4.5조원)의 0.18%(82억원) 수준에 불과하고, 신용 보증 한도 역시 최대 1억원(지역 신보의 경우 최대 4억원)에 불과하다.

이번 활성화 방안에는 신용보증기금(신보),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 신보) 등 정책자금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포함됐다. 신용보증기금은 사회적기업 대상 현행 1억원 보증 기준을 3억까지 늘리며, 금융위와 중기부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내 사회적 경제 기업 대상 평가 모형을 마련해 사회적 가치에 따라 공적자금 지원을 확대한다. 또한 고용노동부와 금융위는 2018년에는 100억원 규모의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모태 펀드를 추가로 조성하며, 300억원 규모의 사회 투자 펀드를 신설한다. 소셜 벤처를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도 조성한다.

우려되는 점은 없을까.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는 “정책자금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사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민간의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면서 “영국의 BSC(빅소사이어티캐피털)처럼 민간 사회적 금융 중개 기관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SC는 2012년 4월 영국 정부가 사회 투자 시장 확대를 위해 1조2000억원 규모로 설립한 독립적인 금융기관이다. BSC는 자금을 사회적기업 및 자선 단체에 직접 지원하지 않으며, 채러티뱅크(Charity Bank) 등 사회 투자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집행하도록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미국의 지역개발금융기관(CDFI)도 저소득 계층과 지역사회에 자본을 조달하는 중간 지원 기관이다. 문진수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는 “손실을 감수하는 촉매 자본 운용을 비롯해 전문 중개 기관을 발굴하고 육성해 풀뿌리 금융기관들을 늘리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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